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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네필 하얀 라쿤
#Q2P0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바타>의 할렐루야 산은 내장된 광석들이 이룬 자기장으로 인해 공중에 떠 있다. 중력과 자기장의 저 완벽한 균형이 깨진다면 땅으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한편의 작품에도 자기장이 있다. <아바타> 시리즈의 거대한 가장자리를 둘러싼 자기장은, 우리가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호시탐탐 우리의 감각을 끌어당겨 균형을 빼앗으려 든다. VFX의 성취에 제압된 나머지 제법 풍성한 영화의 내면을 보지 못하거나, 확인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제작비 액수가 사실인 양 회자되거나, 작품 곳곳의 상징이나 뒷얘기 등을 입시 문제 정답 찾듯 알아낸 다음 이거야말로 혁신이라고 추켜세우는 태도 같은 것들이 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현대인의 감각은 돈과 기술에 의해 쉽게 흐트러진다. 기술은 이야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며, 돈은 기술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함을 익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 혹은 우리의 시장은 이 영화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해 영화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본 이야기다.


5편 중 2편의 위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전세계에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뤄지는 흔하고도 안전한 극 구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줄 아는 시나리오작가 중 하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부터 <타이타닉>, <아바타>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가 글로벌 흥행 기록을 스스로 경신해오기까지는 역사가 검증한 플롯의 기초를 솜씨 좋게 요리한 덕이 적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 관객에게도 대부분 통하는 이입의 순서. 그 승률을 누구보다 제대로 맛본 카메론이 5부작으로 기획한 <아바타>시리즈는, 각각의 작품뿐 아니라 5편의 이야기 전체 구상에도 들어 있을 것이다. <아바타: 물의 길>(이하 <아바타2>)을 보고 나면 이번 편이 ‘전개’에 해당하는 큰 그림의 일부라는 심증이 더 단단해진다. 뭇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와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으로 ‘위기’와 ‘절정’이 5편 후반부까지 이어지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리라. 그리고 그가 확보한 투자액에 비례해 시각효과의 신기원이라는 전세계의 찬사 또한 경신되리라. 일반적으로 ‘발단’에서 주요 인물과 그 세계관을 선택하고 펼쳐 보이는 절차를 밟는다면, ‘전개’에서는 캐릭터의 인물됨을 다지고 위기를 위한 복선을 매설하는 등 지반 및 골조 작업을 시공한다. 작품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될 순서지만 지루해지기 십상이어서 유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다 이 부분을 무리하게 줄이는 바람에 완성도를 훼손한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아바타2>의 상영시간이 굳이 3시간12분이나 돼야 했던 이유도 자신의 이야기 뼈대에 빈틈을 만들 수 없다는 감독의 고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2>에 대한 반응 중 부정적인 쪽을 거칠게 요약하면 “시각효과는 탁월하지만 내용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아바타2>가 전개 파트여서 그렇다. 이제부터 곳곳에 설치된 놀잇감을 가지고 제대로 놀기만 하면 된다. 3편부터 주요 인물들은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 와중에, 자녀를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흑화하거나, 각자의 캐릭터를 부여받은 미래 세대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참신한 에피소드를 내놓고, 빌런 또한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받아 보다 입체적인 갈등 국면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국 이 시리즈는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빌려온 생태주의 세계관을 전제하되 할리우드 영웅 서사를 숭고한 분위기로 얹으며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이다.


자연-인간 관계에서 부족간 관계로


해석을 확대하기에 앞서 이 시리즈의 전제인 <아바타> 세계관의 한계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그간 <모노노케 히메>(1997)와 비교되고 <늑대와 춤을>(1990)에 대입되는 등 자연스러운 반응이 적잖이 제기됐으니 핵심만 정돈하자. <아바타>는 좁게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규모 학살하며 건설한, 현재의 미국을 단순명료하게 성찰한 텍스트다. 넓게 보면 세계의 중심을 인간으로 보고 대자연을 타자화·대상화하는 이원론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생태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일원론으로 돌려놓자는 세계관이 바탕이다. 문제는 이걸 백인 출신의 영웅이 대자연으로부터 선택받은 메시아가 되어 지극히 이원론적인 방식으로 폭력 스펙터클을 구현해낸다는 데 있다. “대지의 어머니께선 편을 들지 않아. 세상의 균형을 지키실 뿐”이라는 멋있는 대사를 읊어놓고도 말이다. 선민의식에서 출발한 영웅의 구세주 서사가 이원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최소한 <아바타>는 일원론 표현(presentation)을 위한 이원론적 재현(representation)이었다.

전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바타2>의 이야기는 한층 시사적인 것이 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꾸준히 업데이트됐을 이 영화의 이야기가 강조하는 것은 ‘이주민 서사’다. 상대적으로 해당 이슈에 관심이 적은 한국 관객의 감각과 이 영화가 만들어진 나라의 그것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취임 직후 국경부터 걸어잠그고 본 트럼프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민족 또는 소수자에 대한 백인 주류층의 불만을 부추겨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현재 공화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경을 열어 범죄자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나라 걱정에 진심이다. 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국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을 넘어선 단계에 접어들었다. 양쪽은 더이상 대화할 수 없게 됐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미국인들은 정치 성향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비인간화하는 수준이다. 구글 검색어 빈도를 분석해주는 ‘구글 트렌드’를 보면, 트럼프 재임 기간 인기 상승 검색어로 ‘부족주의’(tribalism), ‘비인간화’(dehumanize)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문명사회에서 검색되지 않을 법한 이런 단어들의 유통이 급증한 이유와 <아바타2>가 다른 부족 또는 다른 종과의 공존을 말하는 데 상당 분량을 할애한 뜻이 겹치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구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리즈가 말할 구원의 주체는


주인공 가족 스스로 이주민이 되어 신체적 특성과 생활양식의 차이를 존중해가는 이야기에 상영시간의 절반 이상을 투자한 <아바타2>가 주목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미래 세대다. 이들은 자칫 빠지기 쉬운 타자와의 불화를 편견 없이 화해로 바꿀 줄 알고 종반부에 이르러 목숨이 위태로운 부모 세대를 각각 구조한다. 물에 빠져 숨 쉴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유전적 아버지를 구해낸 이 자녀들은, 산업자본주의의 풍요가 숨 막히는 지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으면서도 이를 초래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직선 경제는 멈출 줄 모르는 부모 세대와 다르다는 걸 보여줄 차례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물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들은 인간의 직선 시스템으로부터 자연의 순환 체계로 돌아가 어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태계와 관계 맺을 것이라고 외치는 듯 보인다. 나는 카메론 감독이 기후 위기와 극단의 갈등 속에서 대체하고자 하는 미래를 3편 이후에 그려갈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예상과 함께, 현생 인류의 구원은 종교적 신이나 메시아적 지도자가 아닌 미래 세대가 스스로 찾아낼 것이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


원본 링크: http://www.cine21.com/news/view/?idx=6&mag_id=10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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