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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네필 하얀 라쿤
#Q2P0

우리 모두는 하찮으므로 위대하다. 이 글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ㅇㅇㅇㅇㅇ>)의 이야기에 영감을 준 동양 사상과 서양 과학의 접점을 들춰보려는 시도이다.


<ㅇㅇㅇㅇㅇ>의 세계관에 다가서기 위해 이 우주가 비어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세상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고, 원자핵과 전자는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 몸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비어 있다.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는 다른 궤도로 이동할 때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양자 도약'을 한다. 관계를 바꾸면 존재는 따라 바뀐다.


불가의 연기론에서 말하듯 우리는 연에 의해 생겨나는 존재다. 에블린은 아버지와 대화할 때는 광둥어를, 남편이나 딸과 말할 때는 만다린어와 영어를 섞어 쓴다. 태어나 자란 주변 처지와 조건 속에서 내가 규정된다.


현대 과학이 추산하는 우주 전체 별의 수는 10²³개로, 그 속에서 우리는 억겁의 시간 속에 우연히 탄생했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 모두가 '우연한 조건들이 겹친 독창적인 결과물'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진화하고 적응해 살아남은 존재들 역시 자기네 환경을 극찬할 것이며, 그런 우리가 "한줌의 시간이라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우주에 결정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원자 단위의 세계에서는 불변의 상태로 관측도 예측도 불가능하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걸 정확히 관측할 수 없으므로 확률에 기대야 하며, 모든 사건의 결과도 확률적으로 해석한다. 이에 조부 투파키는 "통계적 필연"을 말하며 죽음에 끌린다. 우리는 138억 년 전 빅뱅 이래 빛이 이동한 만큼만 볼 수 있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중우주론은 '거품' 밖과 '지평선' 너머에 대한 탐구 속에서 나온 가설이며, 영화는 이를 채택해 매우 괴상한 행동으로 거품 밖으로 점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존재로 '세탁소 에블린'을 내세웠다. 잠재력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무수한 기회를 놓쳐버린 "최악의 에블린"은 그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에블린은 "더 제로"로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우리 모두에게 포옹을 건넨다. "쓰레기든 뭐든 난 너와 여기에 있고 싶어."


원본 링크: http://www.cine21.com/news/view/?idx=6&mag_id=10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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