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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네필 하얀 라쿤
#Q2P0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3>)가 주는 감동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같은 수사적인 표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가오갤3>의 감동을 설명하는 것에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뜻이다. 예컨대 퀼(크리스 프랫)이 우주에서 돌처럼 굳어가다 아담(윌 폴터)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나는 장면이 더 뜨겁게 느껴지는 까닭을 (전편을 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에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던 욘두(마이클 루커)의 모습까지 덧붙여 이야기해야 할 텐데, 문제는 그걸로도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욘두와 퀼의 길고 긴 사연을 추가로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것이 반드시 설명되어야만, 극 후반 사랑으로 감화되는 아담이라는 캐릭터의 상징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전부일까? 애초에 은하계 어딘가에서 지구인과 외계인, 그리고 말하는 동물들이 뒤섞여 영어로 된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는 이 세계의 설정 자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겐, 대체 어디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은 나의 이런 곤란함에 관한 글이다. 개인적으론 <가오갤3>를 눈물을 흘릴 정도로 제대로 즐겼지만, 이 감동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려면 어떤 단어들을 나열해야 할지 막막한 한 관객의 곤란함. 이럴 땐 차라리 그루트(빈 디젤)처럼 “아이 엠 그루트”라는 말로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퉁쳐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공백이 만드는 곤란함


그런데 이 곤란함이 나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영화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이는 MCU 작품들을 꼬박꼬박 챙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입장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 꾸준히 흐름을 좇은 입장에서 <가오갤3>는 분명 언급될 가치를 지닌 작품임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씨네21>처럼 매번 ‘관람 전 알고 보면 좋을 n가지 정보’ 같은 것들을 사전 설명하는 것이 이제는 정말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 인기 시사/예능 유튜브 채널의 영화 코너에선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패널이 본격적으로 <가오갤3>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은 토르와 헤어지고 노웨어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사전 배경의 일부분을 간략히 언급만 했을 뿐인데, 진행자는 곧바로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어서 패널의 입에서 ‘스타로드’와 ‘말하는 너구리’와 같은 단어가 나오자 진행자는 고개를 떨구고, 다른 출연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위의 모습은 물론 쇼의 성격상 어느 정도 과장된 측면이 없지는 않겠으나, 나를 비롯해 MCU를 즐겨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그나마 한바탕 웃은 뒤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갈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상황이 좋지는 않다. 언어의 차이로 인해 겪은 소통 불가의 경험은, 다음 소통의 시도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마블을 보는 관객’과 ‘마블을 보지 않는 관객’ 사이의 ‘영화 대화’는 껄끄러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앞으로도 악화될 일만 남았다. 말하자면 <가오갤3>가 감동적이면 감동적일수록, 앞으로 공개될 MCU의 작품들이 명작이면 명작일수록 두 집단의 언어는 더 상이해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수상 소감으로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영화다”(I think we use only one language, the cinema)라고 했을 때의 그 ‘언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위기인 것은 마블이 아니라 머지않아 단 하나의 공통 언어를 쓸 수 없게 될 관객일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마블을 보는 관객’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분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MCU의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관객은 ‘계속 볼 것인가’와 ‘이제 그만 MCU를 떠날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렇게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만 함께한 관객과 페이즈4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하차한 사람간의 통할 리 없는 대화가 다시 한번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가오갤3>의 주요 서사 중 하나인 퀼과 가모라(조에 살다나)의 사연은 상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퀼은 모험 내내 페이즈의 일부분을 경험하지 못한 가모라에게 ‘우리 좋았다’는 말을 하며 그를 다시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가모라는 퀼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며 자신이 느끼지 못한 퀼의 사랑을 짐작하기는 하지만 끝내 퀼과 함께하는 선택을 내리진 않는다. 그들 사이의 공백은 현재로선 MCU의 어떤 히어로가 등장해도 메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스타로드 퀼 역시 그곳에 길을 놓는 데 실패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미덕은 늘 성공과 실패의 ‘웃픈’ 공존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이번 실패만큼은 그 어떤 농담으로도 웃어넘기기 어려워 보인다.


“다들 사랑해”


가오갤을 떠나는 또 한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모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연출과 각본을 담당했으나 이제는 다른 함선의 캡틴이 된 감독 제임스 건이다. 감독이 바뀌는 인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에, 캡틴이 교체되는 영화 속 서사가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례가 앞으로의 영화 역사상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이처럼 <가오갤3>의 감동을 얘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또 하나의 추가 설명(들)이 필요할 것이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계속해서 곤란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로켓(브래들리 쿠퍼)이 퀼에게 MP3 플레이어를 건네받는 것이 왜 감동적이냐면. 크래글린(숀 건)이 각성하는 순간에 욘두가 건네는 말이 어디서 나왔던 것이냐면. 쿠키 영상에서 로켓이 재생한 노래 <Come and Get Your Love>가 어디서 시작된 것이냐면…. 이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그동안 멤버들이 보여줬던 끈끈한 사랑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들이 그저 “나는 그루트입니다” 정도의 무의미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에 시리즈 내내 “아이 엠 그루트”라는 소리만 냈던 그루트가 “다들 사랑해”(I love you guys)라고 말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에 관해 많은 관객이 이미 감동적인 해석을 내놓은 것 같기는 하다. 극 중에서 그루트의 언어는 그루트와 긴밀한 유대를 쌓은 멤버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설정인데, 마지막에 그루트의 말이 들렸다는 것은 이제 그 언어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해졌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 대사를 들은 순간 큰 감동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소통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걸 감독이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져 슬펐다. 이런 나 역시 언젠가 MCU를 떠날 날이 올까. 우주를 떠나 지구에서 새 삶을 시작한 퀼은 행복할까.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원본 링크: http://www.cine21.com/news/view/?idx=6&mag_id=10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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